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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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좋지 않은 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신뢰해 마지않는 사람을 만난 김에 속내를 털어놓았다. 상대의 직업은 소설가였다. 그는 잠자코 내 하소연을 듣고 있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자책하지 마라, 반성 좀 그만 해라, 마음 공부할 시간 있으면 잠을 더 자라, 그냥 미워하고 욕해라···. 그러다 말고 대뜸 묻는 것이다. “복수는 안 할 거예요?” 그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당한 만큼 갚아 준다. 갚아 주는 사람들만이 주인공이라는 왕관을 쓸 자격을 얻는다.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억울해하고 괴로워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만큼 쓸모없는 게 없다. 슬퍼하며 주저앉아 있는 만큼 복수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소설가가 아니다. 소설가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니, 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까지 하다. 복수에는 너무나도 큰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복수하다 실패하느니 차라리 잊어버리고 마는 게 우리의 선택이자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인류의 자산 내역에는 반드시 ‘복수’가 있다. 그것도 아주 큰 비중으로. 햄릿도 오이디푸스도 모두 복수심에 불탔다. 인간에게 복수란 뭘까. 꼭 필요한 것일까.

복수라는 행위의 복잡성과 자기 파괴성에 대해서라면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딸을 유괴하고 살해한 자를 찾는 일에 자기 인생을 다 걸어 버린 남자가 드디어 범인 류를 만난다. 그런데 류가 생각만큼 나쁜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을 때의 곤란함을 남자의 ‘아무 말’이 여실히 보여 준다. 남자는 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네가 착한 놈인 거 알고 있다. 그러니까 너도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복수하는 순간 자신도 망가진다는 걸 알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남자는 류의 아킬레스건을 끊는다. 그리고 자신을 뒤쫓던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의 죽음은 목표를 완수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복수라는 행위의 숙명이자 본질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복수는 꼭 필요한 걸까. 수많은 복수가, 아니 모든 복수가 자기 파괴를 전제하는데도? 복수라는 복잡하고 모순된 사건은 자신을 상실하면서까지 벌해야 할 존재가 있을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기 파괴를 전제한 선택을 가리켜 선택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강간 복수극으로 알려진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을 봤다. ‘promising young woman’은 미국에서 관용구처럼 자주 쓰이는 표현 ‘promising young man’을 미러링한 표현이다. 전도유망한 청년 혹은 촉망받는 청년이란 말이 언제 자주 쓰였을까. 대학교 기숙사에서 벌어지곤 했던 강간 사건과 함께 주목받은 이 표현은 가해자의 처벌을 유보하면서 학교 당국이 자주 사용한 말이다.

이 영화는 한 편의 기록물에 가깝다. 강간 문화에 담합하는 사회의 민낯을 보여 주는 대사들이 차라리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부족할 게 없을 정도로 만연한 에피소드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의대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으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고 끝내 자살한 니나의 친구 캐시가 도모하는 복수극이다. 캐시 또한 학교를 그만두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는 밤이 되면 클럽에 가서 만취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그때 어김없이 캐시와 하룻밤을 보내려 하는 남자들이 접근해 온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던 캐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돌변해 남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위에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다. 캐시의 진짜 복수는 가해자를 향해 달려간다.

이 글에서 캐시가 행한 복수의 전모를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을 훼손하는 것이 복수라는 앞선 명제에 따라, 캐시가 도모하는 복수의 경로가 그녀 자신의 죽음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캐시가 보내 놓은 예약 문자의 내용이다. 캐시의 복수에는 눈엣가시인 자신이 가해자들에 의해 살해당할 가능성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가능성은 현실이 됐고, 그가 보낸 예약 문자가 그 증거다. 문자는 가해자가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 가해자 옆에서 폭력을 구경하고 즐겼던 사람에게 보내진다. “이게 끝인 줄 알았지? 이제 시작이야.”

뭣 모르던 시절의 장난이었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피해자도 없고 목격자도 없으니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던 그들에게 캐시의 문자는 찬물을 끼얹는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고통스럽게 기억해야 할 거라고, 끝은 없을 거라고. 캐시가 날린 ‘시작’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promising young woman을 가로막고 있던 promising young man을 사회로부터 치우는 것이다. 캐시의 복수는 끝난 이야기에 불을 지핀다. 끝나서는 안 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에머럴드 피넬(Emerald Fennell)

198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배우이자 작가이며 영화 각본가이자 감독이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 작품으로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2의 작가이자 총괄 프로듀서로 활약했으며,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카밀라 파커볼스를 연기하는 등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극 중 캐시 역을 맡은 배우 캐리 멀리건과 에머럴드 피넬은 모두 1985년생이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촉망받는 젊은 여성’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영화는 미투 시대의 리벤지 무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