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최근 여의도에서 전환사채(CB) 발행 열풍이 불고 있다. 전환사채 발행이 필요 없는 우량기업까지 전환사채를 미리 발행할 정도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우량기업을 골라가며 전환사채를 쇼핑할 수 있게 된 기관 투자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전환사채는 특정 시기(전환 시기)가 되면 투자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이 붙은, 특수한 성격의 사채다. 일반적인 사채와 마찬가지로 이자율·만기 등의 조건이 정해져 있으면서 전환 가격,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전환 시기 등의 투자 조건이 추가된 형태다. 일반적인 사채보다 다양한 회수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게 전환사채의 장점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주식시장에서 매각하고,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채권으로 유지하면 된다. 또 주가 하락 시 전환가액을 최초 전환가액의 70%까지 하향 조정할 수 있는 리픽싱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아 투자 손실이 제한적이다. 주가가 하락해도 주식 전환 시 받을 수 있는 주식 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환사채 대란이 갑자기 일어난 건, 금융 당국이 7월부터 전환사채 발행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많은 상장 기업이 제도 개정 전에 전환사채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 당국이 예고한 규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상장 기업이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으로 전환사채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을 제삼자에게 부여한 경우, 콜옵션 행사자가 확정되면 주요 사항(행사자와 행사를 통해 전환되는 주식 수 등)을 공시해야 한다. 만약 콜옵션 행사자가 최대 주주나 특수관계인이라면 콜옵션 행사 한도는 전환사채 발행 당시 지분율 한도로 제한된다. 두 번째 방안은 주가 하락에 따른 전환가액 리픽싱 이후 주가가 상승하면 전환가액 상향 조정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무자본 인수합병(M&A)과 전환사채 관련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려는 것이 규제 방안의 목적이다. 그러나 자칫 전환사채의 순기능까지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이는 유동성이 넘쳐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 끝나고 금리 인상의 시대가 왔을 때, 가뜩이나 어려워질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전환사채는 전환가액 리픽싱이 주가 하락 시에만 이뤄진다. 앞으로는 주가가 오를 경우에도 전환가액을 상향하는 조건을 의무화해야 한다. 얼핏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맹점이 있다.

전환가액 리픽싱의 취지를 살펴보자. 리픽싱은 주가가 하락했을 때도 전환사채 투자자가 현금 상환을 요구(상환청구권 행사)하지 않고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발행사는 만기가 되거나 만기 이전이라도 투자자가 상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일반적인 사채처럼 투자자에게 상환하기로 한 금액을 상환해야 한다. 발행사가 현금 자산의 여유가 없다면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발행사는 투자자에게 현금 상환보다는 주식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

전환권 조항이 투자자의 주식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여기에 제한이 생긴다면 발행사는 채권 상환을 위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주가 상승기라면 발행사는 자금 조달의 여유가 충분해 채권 상환에도 문제가 없겠지만, 그 반대 경우라면 막막할 것이다. 전환사채 발행 기업은 일반 사채를 발행해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만한 재무 안정성이 없고 신주 발행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콜옵션 제한 조치도 득보다는 실이 클 수 있다. 경영권 방어 조치가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에서 전환사채의 콜옵션 제한은 기업 경영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벤처기업은 현금 여유가 없어 상장 전부터 꾸준히 투자받으며 성장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곳도 많지 않다. 미국처럼 황금주(차등의결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돈 많은 창업자가 아니라면 지분율 방어가 버거운 게 현실이다.

경영권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지분율 확대를 보호하는 것마저 엄격하게 제한한다면 어떨까. 금수저만 창업할 수 있고, 가난한 창업자는 기업 성장의 보상을 받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전환사채에 여러 조건이 부가적으로 생긴 데에는 다 발행사와 투자자에게 이유가 있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모으려는 목적이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차 회사가 잘되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돈 벌 기회가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낮은 이자율에도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것이다.

만약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돈 벌 기회가 줄어든다면 투자자는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투자자로서는 전환사채 발행 시점에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리스크를 부담하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자율이 일반 사채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발행사는 자금 조달 비용 절약의 기회를 잃게 된다.


전환사채 발행 규제는 ‘중소기업 자금 조달’이라는 전환사채의 순기능까지 저해할 수 있다.
전환사채 발행 규제는 ‘중소기업 자금 조달’이라는 전환사채의 순기능까지 저해할 수 있다.
국내 한 중소기업 생산 라인에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내 한 중소기업 생산 라인에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발행사 감독 강화 선행돼야

국내 전환사채의 대부분이 공모가 아닌 사모 형식으로 발행되다 보니 발행사는 예비 투자자와 발행 조건에 대해 사전 협의한다. 이 과정에서 발행사와 투자자가 이면 계약을 하는 배임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환사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대주주는 다른 형태의 거래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주주 가치를 타인에게 이전할 수 있다.

물론 그간 전환사채가 재벌 기업의 편법적인 지분 확대 수단, 무자본 M&A, 사모 운용사의 펀드 돌려막기 등 각종 불법 행위와 불공정 행위에 이용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의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전환사채 발행을 규제하는 건 선후 관계가 뒤바뀐 일이다. 금융 당국이 전환사채 발행사를 엄격하게 심사해 부당한 조건으로 거래했는지 감독한다면, 불법 행위는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사후적으로도 금융 당국이 적발한 불법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금융 범죄 형량을 높이는 등의 다양한 감독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전환사채라는 수단부터 칼을 대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는 건 애먼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까지 옥죌 수 있다. 근본적인 개선 대책 없이 미봉책만 쏟아냈다가 금융 당국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까 봐 우려스럽다. 유동성이 풍부한 지금은 다 괜찮게 보이겠지만,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자금 조달이 막히는 건 순식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