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대명사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1970년대에 “기업 지배구조는 오로지 주주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주주 중심(shareholder primacy)’ 주의다. 이어 2019년 글로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181명은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주주만이 아니라 고객·종업원·공급자·지역사회, 그리고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이끌겠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소위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유행어가 됐다.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ESG가 새로운 자본주의의 진화이자 자본주의의 ‘망가짐’을 드디어 CEO들마저 인정했다는 식으로 과도하게 해석한다. 그러나 선진국 CEO들은 이미 끊임없이 주주, 특히 기관투자자들의 압력과 견제를 받는다. 이들의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 수용은 기업과 전체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주 중심 지배구조에 대한 주된 비판은 주주들이 단기 이익을 위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희생한다는 것에 집중된다. 하지만 이는 프리드먼의 주주 중심 주의를 단기적 이해로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비판이다. 실증 연구들은 주주들의 역할이 기업의 노동생산성, 총요소 생산성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혁신의 증가, 유해물질 배출 감소, 구성원의 다양성 증가 등 즉, ESG에서 말하는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을 단기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게 만든다는 비판은 증시에서 기관투자자들의 증가와 함께 제기돼 왔다. 그러나 미국 상장회사의 기관투자자 비중이 1950년대 10%에서 최근 70%로 커졌지만, 이 기간에 미국 기업들의 혁신 역량이나 지속성장 역량이 훼손됐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 경영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주주 중심 경영이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침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은 상품과 노동시장의 경쟁 압력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주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종업원의 이해를 심대하게 침해하면 우수 인력이 먼저 다른 기업으로 이탈하거나 법적 소송 등으로 대응하는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권과 환경적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의 상품은 소비자들이 외면한다.


ESG는 CSR의 다른 이름에 불과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에 있다. 우선 근본적으로 많은 목표, 그것도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울러 ESG 유행으로 높아진 사회 책임은 기업 외부의 사회적·정치적 간섭을 강화해 경제의 정치화로 치달을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또 ESG 자체가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경영을 촉진할 수 있다.

ESG는 지난 수년간 주장돼온 사회 책임 경영(CSR)의 다른 명칭일 뿐이다. 많은 실증 연구는 CSR과 기업의 성과가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ESG든 CSR이든 △그 지표의 선정이 자의적이고 △측정하는 순간 객관적, 계량적 지표에 집착하게 되고 △지속가능성은 종종 측정이 어려운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여성 임원의 수는 측정할 수 있지만, 여성이 평등하게 일하는 기업 문화는 측정하기 어렵다.

물론 소비자와 대중이 환경 등 사회적 가치에 민감해지고, 그들의 관심이 쉽사리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경영자들은 이러한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ESG나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 경영이 주주 중심 주의를 대체하거나 시장경제의 한계를 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잘못된 것들이다. 이는 자본주의를 새로이 설계해야 한다는 반(反)자유시장주의자들의 시도이거나 CSR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컨설팅 시장을 노리는 이해 집단의 마케팅 수법일 가능성이 크다. 자유시장 경제는 회복 탄력성이 매우 높은 제도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